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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윤동주 시 한수 공부하기] - 초한대
2018년 06월 10일 22시 26분  조회:4665  추천:0  작성자: 죽림
초한대

 



                      윤동주 / 시인 

 

초 한 대ㅡ

내 방에 풍긴 향내를 맡는다.


광명의 제단(祭壇)이 무너지기 전
나는 깨끗한 제물(祭物)을 보았다.

 

염소의 갈비뼈 같은 그의 몸, 
그의 생명(生命)인 심지(心志)까지 
백옥(白玉) 같은 눈물과 피를 흘려 
불살려 버린다.

그리고도 책상머리에 아롱거리며 
선녀처럼 촛불은 춤을 춘다.

매를 본 꿩이 도망하듯이 
(暗黑) 암흑이 창구멍으로 도망한 
나의 방에 풍긴 
제물(祭物)의 위대(偉大) 한 향(香) 내를 맛보노라.

 


                   1934년 12월 24일





오늘은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일제강점기 하에서 
일제의 질곡에도 불구하고, 겸손한 의지와 
신념으로 민족에 향한 광명을 선사하고 
민족의 별이 되신 윤동주 시인의 시 한편을 
읽어 봅니다.
윤동주 시인이 15세 되던 해에 썼다고 하는
하는 『초한대』라는 시입니다.

 

 

 

스티커 이미지

 



 

■ 핵심 정리

* 성격 : 참회적, 사색적

* 어조 : 예찬적 어조

* 특징 : 1) 초에 빗대어 자신의 마음을 비유적으로 드러냄

         2) 공감각적 심상을 사용하여 주제를 부각

         3) 반성적, 참회적 분위기로 엄숙함을 자아냄

* 짜임 : 1연 - 초의 향기를 맡음

        2연 - 깨끗한 제물과 같은 초

        3연 - 자신의 몸을 불사르는 초

        4연 - 희생을 기꺼이 감수하는 초

        5연 - 초의 희생과 사랑에 대한 감동

* 제재 : 한 대의 초

* 주제 : 초의 위대한 헌신과 그 향기

 

 

■ 이해와 감상

이 시에서 초는 ‘염소의 갈비뼈 같은’ 자신을 태워 ‘광명’의 제단을 만든다. 초에 자신의 ‘생명인 심지’에 불을 피워 주변을 밝히고 사방에 향내를 풍긴다. 시적 화자는 자신의 몸을 소신공양(燒身供養)하는 초를 가리켜 ‘깨끗한 제물’이라고 칭한다. ‘백옥 같은 눈물’까지 흘리면서 자신의 전체를 세상에 주는 초의 희생이야말로 시적 화자가 기리는 ‘제물의 위대한 향내’가 아닐 수 없다. 이 작품은 ‘책머리에 아롱거리며’ 타고 있는 촛불을 바라보며 그것이 지닌 헌신과 사랑의 의미를 광명과 거룩한 향기의 이미지와 결합시켜 표현하고 있다.

 

◈ 이야기로 풀기

 

* 1연 : 내 방에 놓인 초 한 대의 향기를 맡는다.

* 2연 : 빛의 제단이 사라지기 전에 나는 자신을 희생하여 제물이 된 초 한 대를 보았다.

* 3연 : 염소의 갈비뼈 같이 가느다란 몸을 가진 초는 그리고도 자신의 생명인 심지를 불

      살라 흰 구슬 같은 눈물과 피를 흘리듯 촛농을 떨구며 자신을 불살라버린다.

* 4연 : 그렇게 자신을 희생하고도 촛불은 선녀가 춤을 추듯 아롱거린다.

* 5연 : 매를 본 꿩이 도망하듯이 빠르게 어둠은 창구멍으로 사라진 방에 풍기고 있는, 촛     불의 위대한 희생이 풍기는 향내를 맡는다.

 

 

◈ 1행의 ‘초 한 대-’에서 ‘-’의 의미는 무엇일까?

일상적으로 무심히 보아 오던 사물인 ‘초’를, 시인은 이 시를 쓰기 전 시상의 구상 단계에서 매우‘ 특별한 의미로 새롭게 다가왔을 것이다. 그것은 바로 ’희생양‘의 이미지로서 ’거룩한 인품을 지닌 하나의 인격체로 느낀 것이다. 그 감동의 깊이와 여운을 ‘-’로 표시하면서 길게 그 의미를 음미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마지막 행의 ‘위대한’ 제물로 이어지는 것이다. 종교적인 거룩함, 경건성의 표현과 닿아 있는 것이다.

 

◈ 왜 ‘빛’을 ‘향기’로 표현했을까?

초는 자신을 희생하여 세상을 밝힌다는 일반적 의미의 이미지와 상징성을 지니고 있다. 그러나 작가는 ‘초’라는 사물을  경건하게, 살신성인, 소신공양의 거룩한 희생을 감수하는, 하나의 인격체로 대하고 있다. 그러므로 그가 지닌 높은 뜻과 인품에서 풍기는 향기로 느끼는 표현이라고 볼 수 있다.

 

◈ 시상의 흐름

1, 2연

중심 제재 제시 [관찰]

3, 4연

제재의 의미 유추 [희생양→아름다움]

5연

화자의 감동 [종교적 거룩함, 경건함]

 

* 초 : 하강과 소멸의 이미지 → 희생양 → 종교적 승화

 

========================

초등학교 때부터 즐겨 읽었던 윤동주의 시는 짧은 동시에서도 언제나 그 풍경이 그림처럼 펼쳐지는 특징이 있다.
촛불이 타들어가면서 초가 녹아내리는 형상을 마치 경건한 제사의 풍경과 분위기로 묘사한 이 시는 읽을 때마다
기억 속에 남아있는 우리 집안 제사의 정경을 떠올리게 한다.

 

 집안 어른들 하얀 모시옷의 조용한 움직임, 은은하게 비쳐 보이는 촛불은 나의 기억에 제사의 상징이다. 그 때문에 기도를 모르던 나는 촛불 앞에서 항상 마음을 정화하고 사사로움을 내려놓는 경건한 제사장이 되기도 한다.

 현대 사회는 어둠을 촛불로 밝히는 일이 없기에 한 촉의 초가 켜진 공간이 재실이 되는 일은 없다. 그러나 나에게 이 세상에 맑고 밝음이 더하기를 원하는 기도가 필요할 때면 나도 모르게 윤동주 시 ‘초한대’가 떠오르며 마음의 촛불 앞에 서게 되었다.

 밝은 빛은 언제나 새 길을 보여주는 희망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그리고 희생은 새로운 생명으로 태어나 풍요를 베풀어 가는 행로임을 믿기 때문이다. 

/나선화 문화재청장

[출처: 중앙일보] [나를 흔든 시 한 줄] 나선화 문화재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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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4년 12월 24일’이라는 날짜가 적혀 있는 <초한대>를 비롯한 세 편의 시가 그것인데, 여기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역사와 한문을 가르치던 명희조 선생에게서 받은 감화였다.
명 선생은 학생들에게 불굴의 독립의지와 치열한 역사의식을 일깨워주는 한편으로,
중국 군관학교 등에 입교를 주선하기도 했다.
<초한대>에 나오는 “암흑이 창구멍으로 도망한 / 나의 방에 풍긴 /
제물의 위대한 향내를 맛보노라”는 시 구절은 그 같은 가르침에 대한 나름의 응답이었다.
민족의 제단에 바쳐진 ‘깨끗한 제물’의 위대한 향내를 맛보던 윤동주 자신 또한 뒤에
그 제물로 바쳐졌으니, 시인의 범상치 않은 예지를 읽을 수 있다.


출처 : 한국시민기자협회
===============================

 

이 시는 화자의 방에 초 한 대가 그의 몸과 심지를 불살라 타오르며 암흑을 쫓아내고 타는 냄새를 풍긴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 시의 전체적인 내용은 다음과 같다.

 

화자의 방에 초 한 대가 타고 있다. 나는 초가 타면서 풍기는 냄새를 맡는다. 초는 마치 광명의 제단에 바쳐진 깨끗한 제물로 보인다. 초는 염소의 갈비뼈 같다. 초는 심지(心志)까지 , 백옥 같은 눈물과 피 같은 촛농을 흘리면서 자기를 불살라 버린다. 책상머리에 아롱거리며 선녀처럼 촛불은 춤을 춘다. 암흑은 매를 본 꿩이 도망하듯이 창구멍으로 도망갔다. 내 방에는 암흑은 없다. 나는 암흑을 쫒아낸 초의 타는 위대한 향내를 맡는다.

 

 

이 시를 구절별로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초한대’는 자신을 희생하여 암흑을 몰아내는 이 시의 제재이다.

 

‘초 한 대- / 내 방에 품긴 향내를 맡는다.’에서 화자는 화자의 방에서 초 한 대가 타는 냄새를 맡는다. ‘초 한 대-’는 제목 ‘초한대’와 다르게 한 칸씩 띄어 써 있다. 이는 화자가 ‘초한대’에 감정을 실어 한 글자씩 띄어 읽은 것이다. ‘초한대’의 타는 모습에 감탄하는 것을 글자를 띄어씀으로서 시각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화자는 초가 타는 냄새를 ‘향내’라는 긍정적인 표현을 사용하여 초에 대해 긍정적으로 인식하고 있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

 

‘광명의 제단이 무너지기 전 / 나는 깨끗한 제물을 보았다.’는 초를 ‘광명의 제단’에 바친 ‘깨끗한 제물’로 비유하고 있다. ‘광명의 제단’은 초가 타면서 ‘광명’을 내면서 ‘제단’에 바쳐진 ‘제물’처럼 스스로를 희생하고 죽는 것으로 보기 때문이다. ‘무너지기 전’은 초가 다 타서 꺼지기 전을 말한 것이다. 흰색의 초를 보고 ‘깨끗’하다고 한 것이다.

 

‘염소의 갈비뼈 같은 그의 몸, / 그의 생면인 심지(心志)까지 / 백옥 같은 눈물과 피를 흘려, / 불살라 버린다.’는 초의 형상과 불타는 심지의 모습과 촛농의 모습을 비유하여 표현하고 있다. ‘염소의 갈비뼈 같은 그의 몸,’은 초의 희고 긴 모습이 마치 염소의 갈비뼈와 같다고 생각하고 있음을 말하는 것이다. ‘그의 생면인 심지(心志)’에서 ‘생면’은 ‘생명’의 오기로 생각하기 쉬우나 오기로 보기는 어렵다. ‘생면’은 ‘처음으로 마주 대함’이란 의미를 가지고 있는데 ‘심지’는 초의 밀랍에 묻혀 있다가 초가 타면서 처음으로 밖으로 나오기 때문에 ‘생면’이라는 단어가 맞다고 생각된다. 초는 ‘염소의 갈비뼈 같은 그의 몸, / 그의 생면인 심지(心志)까지’ ‘불살라 버린다’. ‘백옥 같은 눈물과 피를 흘’는 것은 초가 타면서 흐르는 촛농을 ‘백옥 같은 눈물과 피를 흘’린다고 비유한 것이다.

 

‘그리고도 책상머리에 아롱거리며 / 선녀처럼 촛불은 춤을 춘다.’는 초가 타면서 보여주는 불꽃을 ‘선녀처럼’ 아름답게 ‘춤을 춘다.’고 직유와 의인법을 사용하여 표현하였다.

 

‘매를 본 꿩이 도망하듯이 / 암흑이 창구멍으로 도망한 / 나의 방에 품긴 / 제물의 위대한 향내를 맛보노라.’는 초가 타면서 밝히는 ‘광명’으로 인하여 ‘암흑이’ ‘매를 본 꿩이 도망하듯이’ ‘창구멍으로 도망한 / 나의 방에’서 초가 타면서 내놓는 초타는 냄새를 ‘제물의 위대한 향내’라고 긍정적으로 표현하고 ‘맛보노라.’고 하여 후각을 미각적으로 감각을 전이화하여 표현하였다. 화자는 ‘암흑’이 없이 ‘광명’만이 존재하는 자신의 방에서 어둠을 밝히는 존재를 인식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화자가 자신을 희생해서라도 암흑을 쫓고 광명한 세상을 만들고 싶은 내면의 마음을 표현한 것이라고 해석을 할 수도 있다.

 
 
================={쟁명}ㅡ


 

윤동주 시인은 저항 시인이 아니다.

 

윤동주 시인을 흔히 ‘저항 시인’ 이라고 말하지만

그 님의 시에는 그런 저항의 의미를 한 글자도 찾을 수 없다.

따라서, 그런 평가는 시인이 살았던 시대적 사회적 배경과

시인의 입장을 해설자가 임의로 추정한 것이다.

 

그 님의 시는 주로 자기 내면의 모습을 살피는

자기애와 철학적 자아, 그리고 이유 모를 슬픔과

마음의 그림자. 여기까지이다.

그리고, 하늘과 바람과 별, 이상과 낭만이랄까?

 

다만, 그 님의 시, “참회록”에서

파란 녹이 낀 구리 거울 속에 내 얼골이 남아 있는 것은

어느 왕조의 유물이기에 이다지도 욕될까” 라는

이 대목만이 유일하게 현실적 의식을 담고 있는데

 

그것도, 조선 왕족과 자신의 일체성에 대하여

부끄럽고 반성하는 의미일 뿐이지 상대방에 대한 저항은 아니다

조선 왕조의 허물과 부끄러움이 내 자신의 정체성이라는

자아 인식과 자괴감을 나타내고 있을 뿐이다.

 

한 단계 좀 더 깊이 유추하자면,

내가 조선의 왕족도 아니고 권력자도 아니기에

내 부끄러움은 근원을 찾을 수 없는 시인의 마음의 병이다’

이라게 해석할 수 있다.

 

아마도, 그 님은 일본 유학 시절에 있어서

조선인으로서 일본인들 앞에서 워낙 부끄러웠을 것이다.

혹자는, 피해자가 가해자들 앞에서 왜 부끄러우랴? 하겠지만

그것은 왕족의 입장이 되어보지 못한 때문이다.

 

윤동주 시인은 기독교 사상을 가졌으니

바이블을 스스로 왜곡되지 않게 이해할 수 있고

그것은 미신화 되어 있는 기독교의 것과 전혀 다른 것이다.

 

하나님은 처음이자 끝이요

문명의 시작과 끝은 전쟁이다.

전쟁은 문명의 짝이며, 경쟁의 하나이며,

빛과 그림자처럼 필연….

 

/

 

모든 전쟁은 하늘의 정의.

약자의 어리석음과 이기성이 역이용 당하고

선과 지혜가 승리하고 새 시대의 주인이 된다.

인류 역사의 모든 나라는 전쟁으로 태어났다.

 

전쟁에 패배한 국가의 국민은 노예가 되거나 죽임 당하고

젊고 예쁜 여자는 성 노예가 되는 것이 인류 역사의 묵시록이며

새 시대의 정의와 공의를 위한 교훈이다.

전쟁의 고통과 추악이 없으면 새 문명의 선과 정의가 없다.

 

문명과 타락과 전쟁은, 하늘님이

사람의 마음 속에 선과 악의 이중 구조를 만들므로서

매사에 사람이 스스로 선과 악을 선택하도록 했을 때부터 계획된

하느님의 일인 극이자, 자연의 기본 현상이다.

 

참 시인의 양심은, 내 국가 사회를 탓할 수는 있어도

남과 적을 탓하거나 욕하지는 못한다.

인간의 모든 문제와 잘못은 나와 우리에게 있지

남과 적에게 있지 않기 때문이다.

 

적을 탓하면 내 문제를 덮게 되는 자가당착.

윤동주 님의 시가 아름답고 위대한 것은

시 자체의 아름다움과 시인의 인간 철학과 예술혼 일뿐이지

전쟁과 제국주의에 대한 저항이 아니다.

 

저항이란 것이 그렇게 아름답고

좋은 것이라면 승리 국에게 영광이 있을 수 없고

태평양 전쟁에서 패배한 일본의 히로히토 천황이

미국의 맥아더 장군 앞에 무조건 항복하지 않았을 것이다.

 

윤동주 시인을 “저항 시인” 이라고 말하는 것은

그 님의 시의 아름다움을 축소하고,

역사적 시대적 사실과 교훈을 왜곡하고

그 님의 죽음을 정당화하는 의미일 뿐이다.

 

시인에 대한 평가는 그 님의 시로써 하는 것이지

시인에 대한 일화나 구전되는 뒷이야기로 하는 것이 아니다.

시에 나타나지 않는 뒷마당의 이야기가

그 님의 시를 능가할 수 없다.

 

그건 어느 쪽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으며

옳지 않는 행위는 결과도 옳지 않다.

 

/

 

그렇다면, 왜 일본은 윤동주 시인을 죽였을까?

 

그것은 윤동주 시인에게 없는 저항 정신 때문이 아니다.

님의 시에 일본에 대한 저항의 의미가 나타나지 않았다면

그것은 굴복 내지는 인정이지, 저항이 아니다.

 

그렇다면, 왜 일본은 윤동주 시인을 죽였을까?

그것은 아마도, 일본제국주의의 윤동주 시인에 대한

역사적 문화적 정신적 열등의식이 아니었을까?

전쟁이란, 지성인들의 것이 아니고

 

어리석고 이기적이고 교만하고 열등의식 있는

죄인들을 앞세워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죄의식이나 열등의식 그리고 교만이란 참으로

안타까운 자기 파괴와 착각을 부른다.

 

/

 

시 또는 글 비평 및 해석에 있어서

시대적 역사적 배경을 바탕으로 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런데, 그것이 글을 바탕으로 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해석이 아니다.

 

꿈보다 해몽 이라는 말이 있지만

그것은 꿈 없는 해몽과 같으니 그것은 어리석은 거짓이다.

시인이란, 근본적으로

 

자연과 하늘님의 원리를 따르는 자로서

자기 집단의 정체성에 매이지 않는 것이다.

국가와 민족과 사회 문화적 정치적 관념에도 매이지도 않는다.

팔이 안으로 굽지도 않는다.

 

시인의 마음이란? 나보다는 더 큰 전체 공의, 즉

대 자연과 지구촌과 인류의 영원과

우주적 공의(公義)에 다아 있으니

하늘님에게나 매일까?

 

시인이 신()을 짓는다.

윤동주 시인은 늘 냉엄한 전쟁의 신 이시고

대 자연의 순리이신 하늘을 우러른다.

 

시인이란? 장사꾼이 아니며

정치인도 군인도 아니다.

그런 영혼의 정체성을 잃은

껍데기들을 따르느니보다는

 

인류의 먼 미래를 향한 하늘의 공의를 따른다.

 

 

오영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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